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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세의 역설: 누더기 법이 만든 강남의 이중가격 현상

by 마일 100 2025. 11. 12.

서울 강남 전세시장이 또다시 혼란의 중심에 섰다. 주택법과 임대차보호법의 미세한 충돌이 시장에 예상치 못한 파급을 불러오며, ‘3년 전세’라는 새로운 형태의 계약이 등장하고 있다. 기존에는 전세 계약이 기본 2년, 갱신을 포함하면 최대 4년이라는 법적 틀 속에서 이뤄졌지만, 최근 강남권 재건축 단지에서는 “3년 계약만 가능”, “3년 단기 거주자 우대”라는 문구가 붙은 전세 매물이 속출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관행의 변화가 아니다. 복잡하게 얽힌 법체계의 결과이자, 실수요자와 임대인 모두가 생존을 위해 만든 ‘비공식 제도’다.

🏠 주택법과 임대차법, 법이 법을 침범한 순간

이 현상의 출발점은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주택법 개정안이다.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는 아파트에 대해 원래 2~5년의 ‘실거주 의무’가 부여되어 있었으나, 정부는 경기 침체와 잔금 마련의 어려움을 이유로 이를 3년간 유예하기로 했다. 즉, 수분양자는 입주 후 3년간 실거주를 하지 않아도 집을 전세로 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임대차보호법은 세입자에게 최소 2년의 거주권을 보장하고, 계약갱신청구권을 통해 한 번 더 2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주택법이 허용한 ‘실거주 유예 3년’은 이 4년의 임대차 보호기간보다 짧다.

결과적으로, 임대인은 세입자에게 “3년만 살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 수밖에 없다. 4년 계약을 허용하면, 유예기간이 끝난 뒤 본인이 실거주 의무를 지게 되어 법 위반이 되기 때문이다. 법과 법의 사이에서 생긴 이 1년의 공백이 시장을 흔들고 있다. 주택법은 임대차법을 무시한 채 만들어졌고, 임대차법은 주택법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았다. 두 법이 각자의 명분을 지키려다, 시장은 그 틈새에서 새로운 ‘비공식 계약 관행’을 만들어낸 셈이다.

💬 3년 계약, 임대인의 불안이 만든 신풍경

이중가격의 핵심은 임대인의 심리다. 강남 잠실진주(잠실래미안아이파크)나 잠실르엘 같은 재건축 단지는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받았고, 실거주 의무가 유예된 대표 사례다. 이 단지들의 소유주 상당수는 실거주를 하지 않고 전세를 통해 잔금을 마련하려 한다. 그러나 세입자가 4년을 거주하면, 3년 후 찾아오는 실거주 의무를 이행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법을 어기면, 주택법 제65조에 따라 최대 1억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즉, 임대인은 ‘3년짜리 임차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현실적 요인도 겹친다. 10·15 대책 이후 토지거래허가구역이 서울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기존 보유 주택을 팔 수 없게 된 이들이 늘었다. 신규 입주를 앞둔 재건축 단지의 소유주 중 상당수가 이전 주택을 처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새 아파트 잔금을 치르기 위해 전세보증금을 이용해야 한다. 세입자와의 계약기간이 짧을수록 본인의 거주 계획을 조정할 여지가 커지기에, ‘3년 계약’이 잔금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타협안이 된 것이다.

📉 기간이 가격을 만든다 – 이중가격 구조의 메커니즘

강남 전세시장에서는 지금 ‘기간할인’이 가격을 결정한다. 조합원 물량(4년 보장)은 전용 84㎡ 기준 14억5천만~15억 원, 일반분양 물량(3년 제한)은 13억 원대에 형성돼 있다. 불과 1년의 차이로 1억~2억 원의 가격 차이가 발생한다. 이는 연간 4~6% 수준의 ‘기간 프리미엄’이 전세가격에 반영되고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15억 원짜리 4년 전세의 시장 이자율을 연 3%로 환산하면, 임대인은 약 4,500만 원의 연 이자 이익을 얻는다. 반면 3년짜리 전세는 계약 만료 후 공실 리스크와 이사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에, 세입자에게 약 1억 원의 할인 혜택을 제공해야 수요를 유지할 수 있다. 시장이 ‘기간을 돈으로 환산’하는 방식으로 스스로 가격을 조정한 셈이다.

이 같은 현상은 경제학적으로 보면 불완전한 계약시장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반응이다. 제도적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시장은 이를 가격으로 전가한다. 즉, 법의 공백을 ‘프리미엄’과 ‘디스카운트’로 메꾸는 것이다. 3년 전세는 법적 불확실성이 만든 새로운 시장 언어다.

🏗️ 세입자의 입장 – “3년 뒤 쫓겨날 수도 있다는 불안”

세입자에게 이 구조는 불리하다. 임대차법이 보장하는 4년의 거주 안정성이 사실상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3년 계약을 수락하더라도,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제소하기는 어렵다. 계약서상 특약으로 명시되어 있으면, 세입자 스스로 갱신청구권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즉, 법은 세입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일부 세입자는 “3년짜리지만 이사비를 지원해준다”는 조건을 받아들이거나, 보증금을 낮춰 체결하는 식으로 타협하고 있다. 이는 실질적인 ‘기간 할인’이자, 계약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는 반(反)법적 관행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계약이 2028년부터 대거 만료될 예정이라는 점이다. 잠실·서초·강동 일대에서 입주하는 대단지의 전세 계약이 일제히 끝나는 시점에, 실거주 의무가 동시에 발효된다면, 수천 세대의 세입자가 퇴거 압박을 받게 된다. 이는 3년 뒤 서울 전세시장에 대규모 ‘이사 쓰나미’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정책의 일관성 결여가 미래의 불안을 예약하고 있는 셈이다.

💰 임대인의 ‘3년 심리’ – 불법은 피하고, 유연성은 확보한다

임대인들은 3년 계약을 통해 세 가지 목표를 달성한다.

첫째, 법적 리스크 회피다. 실거주 의무를 위반하면 과태료뿐 아니라, 분양가상한제 적용 단지의 경우 향후 청약 제한이나 재당첨 금지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이는 자산가에게 심각한 불이익이다.

둘째, 유동성 확보다. 전세보증금은 사실상 무이자 대출이다. 임대인은 이 자금을 통해 잔금을 치르거나, 기존 대출을 상환한다. 계약기간이 짧을수록 시장 상황에 따라 전세보증금을 조정할 여지가 생긴다.

셋째, 세제 변화 대응이다. 정부가 향후 임대소득 과세를 강화할 경우, 3년 후 매도를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남겨둔다. 즉, 3년 계약은 법적·재무적 유연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적 선택이다.

📈 민주당의 ‘333 전세법’과의 연결 고리

이러한 시장의 자율 조정은 역설적으로, 과거 민주당이 추진했던 ‘333 전세계약제’와 닮아 있다. 이 제도는 2021년 총선 공약으로 제시된 안으로, ▲최소 계약기간 3년, ▲임대료 인상률 3% 상한, ▲최대 3회 갱신을 골자로 한다. 당시 추진 배경은 “2년 계약은 너무 짧다”는 세입자 보호 논리였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지금 시장이 ‘3년’을 기준으로 스스로 조정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333 전세제’는 법제화되지 못했지만, 시장은 다른 이유로 비슷한 형태를 구현한 것이다. 다만 차이점은, 민주당의 안이 세입자 보호 중심이었다면, 현재의 ‘3년 전세’는 임대인 보호 중심이라는 점이다. 구조는 같지만 방향은 정반대다.

향후 이 두 현상이 결합할 가능성도 있다. 만약 차기 국회에서 전세시장 불안이 다시 쟁점화된다면, 정부는 임시방편으로 ‘3년 계약 표준화’를 검토할 수 있다. 임대인의 실거주 의무, 세입자의 안정성을 동시에 고려한다는 명분이다. 그러나 제도화되면, 시장의 자율 조정 기능은 더 약화될 것이다. 지금의 혼란은 제도 공백이 만든 결과이지만, 그 공백을 인위적으로 메우면 또 다른 왜곡이 생긴다.

🔍 제도의 본질적 문제 – 법이 시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한국의 부동산 제도는 언제나 ‘사후 입법’의 구조다. 시장에서 문제가 터진 뒤에야 법이 만들어진다. 주택법과 임대차법의 충돌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실거주 의무 유예는 수분양자 구제책으로 만들어졌지만, 임대차법의 존재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반대로 임대차법은 세입자 보호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분양시장과의 연결고리를 무시했다. 이처럼 각기 다른 법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할 때, 시장은 그 충돌을 ‘비공식적 합의’로 해결하려 한다. 지금의 3년 계약은 법을 피하는 꼼수가 아니라, 제도의 불완전성을 메우는 일종의 ‘시장 자구책’이다.

📉 장기적 파급 – 불안의 사슬이 이어진다

단기적으로는 전세가격이 낮아지는 효과가 나타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불안 요인이 된다.

첫째, 3년 만료 시점에 임차인 교체가 집중되면, 대규모 이사 수요가 발생해 전세난이 재현된다.

둘째, 임대인은 향후 시장 상황에 따라 실거주를 미루거나 매각을 택할 수 있어, 매물의 불확실성이 커진다.

셋째, 전세가격의 기준이 ‘기간’으로 분화되면서, 같은 평형이라도 계약 조건에 따라 1억 원 이상 차이나는 이중가격이 고착화된다. 이는 전세시장 전체의 가격 투명성을 해치고, 향후 금융권의 전세대출 심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 결론 – ‘3년 전세’는 법의 실패가 만든 시장의 합리화다

지금 강남에서 벌어지는 3년 전세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주택법과 임대차법이 서로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움직일 때 나타나는 예측 가능한 결과다. 정부가 실거주 유예를 결정할 때는 ‘분양시장 안정’을, 국회가 임대차법을 개정할 때는 ‘세입자 보호’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중간에 존재하는 것은 ‘시장’이라는 현실이다. 시장은 언제나 법보다 빠르다. 법이 놓친 1년의 공백 속에서, 임대인과 임차인은 각자의 생존 방식으로 균형을 찾는다.

 

결국 이 문제의 본질은 기간이 아니라 신뢰다. 2년이든 3년이든, 시장은 일관된 제도와 명확한 기준을 원한다. 정부가 진정으로 전세시장을 안정시키고 싶다면, ‘333’이든 ‘3년 유예’든 간에 서로 다른 법이 동일한 시간축 위에서 작동하도록 정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3년 전세는 또 다른 불안의 씨앗이 될 것이다. 결국 시장은 언제나 법보다 똑똑하다. 정부가 만든 법의 빈틈 속에서 스스로 가격을 조정하고, 위험을 분산시키며, 살아남는다. ‘3년 계약’은 혼란의 결과가 아니라, 합리성의 부산물이다. 그러나 그 합리성은 언제나 불안정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또 다른 규제가 아니라, 제도의 조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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