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부채 126조 원, 그 숫자가 정말 위기 신호인가?
최근 뉴스나 정치권 발언에서 자주 언급되는 “LH 부채 126조 원”이라는 숫자는 얼핏 들으면 공공부문이 감당하기 어려운 심각한 재정 위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수치는 단순한 '빚'이라기보다는, LH가 미래 주택공급과 도시개발을 위해 투자해온 누적 자금에 가깝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으로, 토지개발 및 공공주택 공급을 위한 정책 수행을 맡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을 차입으로 조달해왔다. 따라서 이 부채는 투자 자산을 기반으로 발생한 구조적 부채다.
2023년 말 기준으로 LH의 총 부채는 약 126조 원. 하지만 LH가 보유한 총 자산은 187조 원에 이른다. 즉, 부채비율은 약 67% 수준으로 민간 기업이나 국제기구 기준에서 보면 과도한 수준이 아니다. 게다가 이 부채의 대부분은 장기채나 프로젝트 기반 자금으로 상환 여력이 충분히 고려되어 설계돼 있다. 문제는 부채 총액 자체가 아니라, 이것이 실제 현금흐름으로 이어지는 방식과 사업의 수익성, 정책의 일관성에 있다.
공기업 부채의 성격, 민간기업과는 왜 다르게 봐야 하나?
공기업의 부채를 민간기업과 동일선상에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접근이다. 민간기업은 이익을 극대화하고 주주 가치를 높이는 것을 주된 목표로 하지만, 공기업은 '사회적 가치 실현'이라는 공공적 목적을 위해 운영된다. LH의 주요 역할은 주거 약자 보호, 무주택자 주거 안정, 도시 균형 발전 등이다. 이러한 공공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채는 필연적으로 수익률이 낮거나 장기 회수형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정부는 이러한 공공기관의 역할 수행을 위해 제도적 뒷받침을 해준다. LH는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예산 및 자금관리 기준에 따라 감시받고 있으며, 유사시 국책은행과의 연계를 통해 일시적 유동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조도 갖추고 있다. 한마디로, LH의 부채는 단순히 기업 도산 리스크와 연결된 민간 부채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LH 부채의 주요 구성 요소와 상환 구조
LH 부채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공공주택 건설을 위한 차입금이다. 이 자금은 주로 장기적 회수 기반이며, 분양형이나 임대형 주택에 투입되어 임대료 수익 혹은 분양수익으로 상환된다. 둘째는 토지 보상 및 개발비용이다. 3기 신도시 등 대규모 토지개발에 필요한 보상금과 기반시설 조성을 위한 자금으로, 일정 기간 후 택지 분양을 통해 수익을 회수한다. 마지막은 기타 공공사업 자금으로, 행복주택, 매입임대 등 비수익성 사업이 포함된다.
이러한 구조는 기본적으로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차입금 상환은 해당 개발사업의 수익을 통해 이뤄진다. 따라서 부채가 누적되더라도, 자산 회수 구조가 명확하다면 재무위기로 해석할 이유는 없다. 다만, LH가 보유한 부동산 자산이 유동화되기 어렵거나 정책상 저가 공급으로 인해 수익성이 낮아진다면 상환 여력에 부담이 생길 수 있다.
공공임대 축소와 공급 차질 우려, 부채와 어떤 관계 있나?
2023년부터 공공임대주택 공급계획이 축소되고 있다. 이는 부채 관리 기조에 맞춰 LH가 자체적으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착공을 보수적으로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임대는 수익성 낮은 장기 사업이며, 건설 비용은 계속 상승하는 반면 임대료는 정부 기준에 맞춰 제한되므로 사업수지가 불리하다. 특히 최근 원자재 및 인건비 상승, 고금리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LH 내부에서조차 공공임대 확대를 부담스러워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로 인해 국토부와 LH는 공급량을 줄이거나 일부 지역의 사업을 연기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3기 신도시 중 일부 지역의 착공이 늦춰지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 예산 균형을 맞추기 위한 조치일 뿐, 중장기적으로는 무주택자와 저소득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다. 부채 관리라는 이유로 공공성이 희생되는 상황이 반복될 경우, 사회적 갈등과 주거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3기 신도시와 LH 부채 문제, 현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3기 신도시는 정부가 수도권 주택난 해소를 위해 2018년부터 추진해온 대규모 주택공급 계획이다.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고양 창릉, 인천 계양, 부천 대장 등 수도권 주요 지역에 30만 호 이상을 공급한다는 목표였다. 그러나 LH의 재무 부담이 가중되면서 일부 지구는 보상 지연, 착공 연기 등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예를 들어, 남양주 왕숙지구는 일부 보상 갈등과 광역교통망 구축 지연으로 본격적인 착공 시점이 늦춰지고 있으며, 고양 창릉과 하남 교산 역시 인근 주민 반발과 인프라 부실 문제로 인해 공급계획이 수정되고 있다. 이런 지연의 배경에는 LH의 재정여력 위축과 사업의 우선순위 조정이 있다는 분석이 많다. 실제로 LH 내부 보고서에서는 ‘사업 선별 추진’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는 곧 수익성 또는 정책성 기준으로 공급이 조정되고 있음을 뜻한다.
결론: LH 부채, 위기보다 '역할 재정의'가 필요한 시점
126조 원이라는 숫자는 분명히 작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곧 ‘위기’라는 뜻은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LH의 부채는 ‘위험한 부채’라기보다는 ‘정책 목적의 부채’이며, 이것을 어떻게 운용하고 회수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문제는 현재 LH가 과도한 정책적 부담을 떠안고 있으면서도 자율성과 유연성은 제한돼 있다는 점이다.
공공임대주택의 필요성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지만, 그것을 모두 LH에 떠맡기는 구조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정부는 재정 부담을 LH에 전가하면서 동시에 사업성과 공급 속도를 강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무적 부담을 '부채 위기'로 몰아가는 프레임은 사실상 책임 회피에 가깝다.
앞으로는 LH의 기능을 명확히 재정의하고, 정책사업과 수익사업을 구분하여 예산 배분과 재무 관리체계를 이원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중앙정부는 LH에 대한 공적 책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필요한 경우 직접적인 재정지원이나 보조금 투입 등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공기업의 부채는 결국 그 사회가 선택한 정책의 결과물이다. 이를 위기 프레임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물론, 이러한 공기업 부채가 통제되지 않거나 정책 실패로 이어질 경우엔 심각한 재무 위기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LH의 재무 건전성을 점검하고 중장기 공급 계획과의 정합성을 따져보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