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5 부동산 대책의 효과가 미미하다는 진단 속에 제기된 보유세 인상 논의는 표적(다주택자)을 겨냥한 정책으로 보이지만, 조세의 전가(귀착) 이론과 서울의 토허제·갭투자 제한 상황을 고려하면 의도치 않은 부작용 — 특히 월세 상승과 세입자 부담 가중 — 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본문은 조세의 전가 원리, 갭투자 규제와 매매·임대 행태 변화, 보유세 인상이 임대시장에 미칠 경로와 정책적 보완책을 쉬운 언어로 정리한다.
10·15 대책에 보유세도?…진성준 '마이웨이'에 野 "경제 공식 무시"
부동산 정책은 민심의 척도를 가를 핵심 쟁점으로 꼽힌다. 문재인 정부 시절 동안 급격히 상승한 집값에 좌절한 민심으로 인해 5년만의 정권교체까지 됐을 뿐더러, 향후 선거에서도 '집값 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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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세의 전가(귀착) — '누가 세금을 내는가'와 '누가 부담하는가'는 다르다
조세의 전가(귀착)은 경제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리 중 하나다. 법률적으로 세금의 납부 의무자가 누구인지(법적 귀속)는 명확할 수 있으나, 경제적 부담이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전가되는지(경제적 귀착)는 시장의 수요·공급 탄력성에 의해 결정된다. 주택은 생필품에 가까운 비탄력적 재화다. 사람들은 주거를 쉽게 포기할 수 없고, 단기적으로 공급은 경직되어 있어 가격(또는 임대료)이 오르면 수요가 크게 줄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보유세를 인상하면 집주인의 고정비용이 올라가고, 기대 수익률을 유지하려는 압력 때문에 집주인은 월세를 인상하거나 전세→월세 전환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중·저소득층, 청년, 소형주택 임차인 등은 임대료 상승에 대한 탄력성이 낮아 실질 부담이 가중된다. 또한 다주택자들의 대응은 다양하다. 즉각 매도해 시장에 매물을 쏟아내는 대신, 양도소득세·거래비용 부담 때문에 '버티기'를 선택하거나 임대료 인상으로 비용을 전가하는 전략을 택할 수 있다. 따라서 보유세 인상만으로 곧바로 다주택자의 매물을 늘려 집값을 안정시킨다는 가정은 현실의 시장 반응을 과소평가할 위험이 크다.
🔍 토허제·갭투자 규제 상황에서의 매매·임대 행태 변화
서울 등에서 시행되는 토허제(갭투자 규제)는 전세 끼고 소액으로 매수하는 전략을 어렵게 한다. 갭투자가 차단되면 신규 매수 수요가 감소하거나 매수자의 자본구조가 바뀌어 실수요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공급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
첫째, 갭투자가 불가능한 환경에서는 기존 다주택자들이 보유를 선택할 유인이 커진다. 양도세·취득세 등 거래비용이 여전히 높고, 향후 가격 상승 기대가 남아 있다면 매물을 내놓기보다 임대를 유지하거나 임대료를 올리는 쪽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신규 매수자의 감소는 거래량 감소로 이어지지만 가격이 즉시 하락하지는 않는다. 거래가 줄어들면 '가격 버티기' 현상이 발생하기 쉬운데, 이는 희소성·관망 심리·정보 비대칭 등이 결합된 결과다.
결국 토허제와 같은 규제가 갭투자 경로를 차단한 상태에서 보유세 인상까지 더해지면, 공급(매물) 증가를 통한 가격 안정화보다는 임대료 상승과 세입자 부담 전가 쪽으로 효과가 집중될 위험이 있다.
🏘️ 보유세 인상이 월세에 미치는 경로와 현실적 영향
보유세 인상이 월세로 귀착되는 경로는 비교적 명확하다. 보유세↑ → 집주인 운용비용↑ → 목표 수익률 유지 필요 → 월세 인상 또는 보증금 구조 변경(전세→월세 전환). 하지만 현실에서는 추가 변수가 많다. 다주택자 다수는 대출·연령·자금운영 문제로 즉시 매각할 수 없으며, 임대사업자 등록·법인화·회계 조정 등으로 세부담을 완화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다. 또한 임대시장의 공급 탄력성은 지역·주택유형별로 크게 달라, 소형주택·원룸·도심 지역에서 전가 비율이 특히 높아질 수 있다. 정책적 충격을 흡수할 장치 없이 보유세를 급격히 올리면 단기적으로 세입자가 부담을 떠안을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로 여러 국가의 사례도 증세가 임차인 부담으로 전가되는 경우를 보여준다. 따라서 보유세 인상을 고려할 때는 임차인 보호 조치(임대료 상한·갱신 기간 개선), 저소득층 주거비 지원, 단계적·예측 가능한 시행 계획 등 완충장치가 필수적이다.
🧩 정책 설계의 함정: 목표와 수단의 불일치
진 의원이 제시한 논리는 '다주택자의 보유 부담을 늘려 매물을 유도하자'는 단순한 인과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시장은 복합적이며, 한 정책 수단만으로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보유세 인상은 공급 확대(신규 주택 건설)보다 즉각적 효과가 약하고, 거래세·규제·시장심리와 상호작용한다. 특히 현재와 같이 토허제로 갭투자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보유세 인상은 매물 유도보다는 임대료 전가나 버티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실효성 있는 정책 패키지는 다음 요소를 포함해야 한다:
(1) 거래세(양도세·취득세) 완화로 매도 유인 제공,
(2) 재개발·재건축·신규택지 공급 가속화로 중장기적 공급확대,
(3) 임차인 보호와 주거비 지원으로 단기적 충격 완화,
(4) 단계적·투명한 시행과 예측 가능한 로드맵으로 시장의 과도한 반응 차단.
✅ 결론 및 제언
보유세 인상은 목표(매물 유도·가격 안정)와 현실(조세전가·갭투자 규제·거래비용)이 충돌할 수 있다. 단순 증세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은 세입자 부담 전가, 임대료 상승, 그리고 기대와 다른 시장 반응을 낳을 위험이 크다. 따라서 정부와 국회는 보유세 인상을 논의하더라도 임차인 보호장치·거래세 조정·공급확대 정책을 동시에 설계하는 ‘패키지 접근’을 채택해야 한다. 또한 정책 효과를 시범 지역이나 단계별로 검증하는 메커니즘을 도입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세금은 도구일 뿐이며, 그 사용 방식이 누구에게 어떤 부담을 주는지 면밀히 따져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