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주택 시장이 고가화되면서 ‘내 집’의 의미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집을 산다는 것이 곧 토지와 건물을 함께 소유하는 것을 의미했지만, 이제는 공공이 토지를 소유하고 개인은 건물만 소유하는 ‘토지임대부 주택’이라는 새로운 형태가 등장했다. 정부는 이를 ‘반값 아파트’, ‘공공분양형 주택’ 등으로 포장하며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고 홍보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공공임대주택과의 차이가 모호하고, 토지 소유권이 없는 한 ‘진짜 내 집’이라 부르기 어렵다는 비판이 거세다. 이 글에서는 토지임대부 주택과 공공임대의 본질적 차이, 그리고 장기적으로 두 제도가 우리 사회의 주거 개념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 토지임대부 주택의 구조 — 반값의 진실
토지임대부 주택의 핵심은 ‘토지 소유권은 국가나 지자체가 갖고, 건물만 분양한다’는 점이다. 입주자는 토지를 ‘빌려 쓰는’ 개념으로, 매월 일정 금액의 토지임대료를 납부해야 한다. 즉, 토지의 영구적 소유권은 공공에 있고, 수분양자는 일정 기간 동안 사용권만 가지는 구조다. 이 때문에 분양가는 일반 아파트보다 30~50% 낮게 책정된다. 이른바 ‘반값 아파트’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다. 그러나 싸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자산 가치 상승의 핵심 요인을 놓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2012년 분양된 강남브리즈힐은 당시 2억 원대에 공급되었지만, 주변 시세는 현재 10억 원 이상으로 올랐다. 하지만 이 상승분 대부분은 토지 가치 상승에 따른 효과이며, 건물만 가진 입주자는 이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없다. 따라서 토지임대부 주택의 ‘반값’은 사실상 ‘반쪽짜리 소유권’을 뜻한다.
🏢 공공임대주택의 본질 — 거주 안정 중심의 복지 정책
공공임대주택은 토지와 건물 모두 공공이 소유하며, 입주자는 일정 기간 동안 임차인으로 거주하는 형태다. 대표적으로 LH나 SH가 운영하는 국민임대, 영구임대, 행복주택 등이 있다. 공공임대의 목적은 분명하다. 저소득층과 청년층에게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제공하는 것. 즉, 자산 형성이 아니라 거주 복지를 위한 정책이다. 이 주택은 보증금과 월 임대료가 저렴하며, 소득 기준을 충족하면 장기간 거주할 수 있다. 다만 소유권은 전혀 없기 때문에 입주자는 언제나 ‘임차인’으로 남는다. 반면 토지임대부 주택은 겉으로는 ‘분양’ 형식을 취하지만, 토지 소유권이 없다는 점에서 공공임대와 다르지 않다. 다만 심리적으로 ‘내 집을 가졌다’는 만족감만 제공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를 ‘분양 포장을 한 임대’라고 지적한다.
💰 가장 큰 차이 — 임대료 구조와 재산권
토지임대부 주택과 공공임대주택의 차이는 결국 ‘임대료의 성격’과 ‘재산권의 범위’에 있다. 공공임대는 월세처럼 매월 임대료를 내지만, 이는 토지와 건물 모두에 대한 임대료다. 입주자는 일정 기간 거주한 뒤 퇴거하거나 재계약을 통해 거주를 연장한다. 반면 토지임대부 주택은 건물을 소유하기 때문에 ‘퇴거’의 개념은 없다. 그러나 토지에 대한 사용료, 즉 토지임대료를 내야 한다. 이 금액은 물가와 공시지가, 금리 등에 따라 인상된다. 결국 장기적으로 보면 공공임대보다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또한 재산권의 범위도 명확히 제한된다. 건물은 매매할 수 있으나, 토지의 소유권이 공공에 있기 때문에 재건축, 용도 변경, 담보 설정 등이 불가능하다. 즉, 토지임대부 주택의 소유권은 ‘형식적’, 공공임대는 ‘비소유형’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둘 다 진정한 의미의 ‘자유로운 재산권’을 제공하지 않는다.
📈 장기 관점에서 본 자산 가치 — 토지의 힘
부동산의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건물’이 아니라 ‘토지’에 의해 결정된다. 건물은 감가상각이 일어나지만, 토지는 한정된 자원이기 때문에 가치가 상승한다. 공공임대주택은 애초에 자산 형성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토지임대부 주택은 분양 형태를 띠고 있어 입주자들이 이를 투자 자산으로 착각하기 쉽다. 문제는 20~30년 후 건물이 노후되면 토지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재건축이나 재개발의 주체가 될 수 없으며, 건물이 철거되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장기 보유 시점에서 토지임대부 주택은 자산이 아닌 소모품이 된다. 이 점이 바로 토지 소유가 부동산 가치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보여준다.
🏙️ 실제 사례로 본 한계 — 강남·마곡·고덕강일
서울의 대표적 토지임대부 주택은 강남브리즈힐(강남 4BL), 고덕강일 3단지, 마곡 10-2단지 등이 있다. 이 단지들은 모두 공공이 토지를 보유하고 있다. 강남브리즈힐의 경우, 2012년 2억 원대에 분양되어 현재 시세는 9억~10억 원대다. 하지만 인근 일반 아파트는 20억 원에 육박한다. 가격 상승률의 차이는 토지 보유 여부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곡 10-2단지는 ‘121호 반값 아파트’로 주목받았지만, 입주자는 토지임대료를 내야 하고, 전매제한 10년, 거주의무 5년의 제약을 받는다. 즉, 싸게 들어갈 수는 있지만 자유롭게 나올 수는 없다. 고덕강일 3단지는 경쟁률이 56대 1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지만, 실제 입주자들은 재산권 행사가 어렵다는 점을 체감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감가상각에 따라 건물 가치가 줄어들고, 토지 가치 상승분은 온전히 공공의 몫이 된다. 이 구조는 결국 ‘공공이 이익을 독점하는 사유화 구조’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 제도적 모호성 — 분양인가, 임대인가?
토지임대부 주택은 제도적으로 ‘분양주택’으로 분류되지만, 법적 성격은 임대와 유사하다. 입주자는 등기상 건물 소유권을 갖지만, 토지 사용에 대한 권리는 제한적이다. 그 결과 세제상에서도 혼선이 발생한다. 보유세·양도세 산정 시 ‘소유자’로 분류되지만, 토지를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소유는 하되, 활용은 못하는 자산’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또한 금융권에서는 토지임대부 주택을 기존 주택담보대출(LTV)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기도 한다. 즉, 형식적으로는 내 집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공공임대의 틀에 묶여 있는 셈이다.
💡 대안 — 소유권 공유형 모델로의 진화
토지임대부 주택의 취지는 나쁘지 않다. 문제는 구조다. 토지를 전부 공공이 소유하기 때문에 입주자는 자산적 보상을 전혀 얻지 못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토지공유형 분양제’ 도입을 제안한다. 이 방식은 입주자가 일정 비율의 토지 지분을 함께 매입하는 구조로, 공공이 지분을 유지하면서도 개인에게 재산권 일부를 부여한다. 해외의 ‘커뮤니티 랜드 트러스트(CLTrust)’ 모델이 대표적이다. 토지는 공동체가 관리하지만, 입주자는 일정 부분의 소유권을 가져 재건축·담보 설정·양도 등에서 제한이 줄어든다. 이런 방식이라면 공공의 주거 안정성과 개인의 자산 형성이 공존할 수 있다. ‘거주 복지’와 ‘재산권 보호’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것이다.
🔎 결론 — 진짜 내 집은 ‘소유’가 아니라 ‘안정’에서 시작된다
토지임대부 주택과 공공임대주택은 형식상 다르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철학에서 출발한다. 바로 ‘누구나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집’을 만들겠다는 목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토지임대부 주택은 내 집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실질적으로는 공공이 통제하는 임대 시스템에 가깝다. 공공임대는 애초에 복지 목적이 명확하지만, 토지임대부 주택은 ‘자산 취득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앞으로의 주거정책은 ‘소유의 양’이 아니라 ‘거주의 질’을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내 집의 진정한 의미는 등기부가 아니라 생활의 안정에 있다. 정책이 이 방향으로 움직일 때, 우리는 ‘진짜 내 집’을 갖지 않아도 ‘진짜 내 삶’을 꾸릴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