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지역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장에서 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 갈등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한국부동산원의 공사비 검증 요청 건수가 2020년 13건에서 2025년 52건으로 5년 사이 4배 가까이 폭증하면서, 정비사업 현장 곳곳에서 파열음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건설자재비와 인건비 상승, 프리미엄 브랜드 적용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중재 제도의 한계와 함께 근본적인 제도 개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재건축 공사비 검증 폭증 현황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시공사의 공사비 증액 요청이 타당한지에 대한 검증 완료 건수는 2020년 13건에 불과했으나, 2021년 22건, 2022년 32건으로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이후 2024년 36건을 거쳐 2025년에는 52건이나 진행되면서 5년 새 4배가량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검증 요청 액수입니다. 2025년 7월까지 접수된 검증 요청 액수는 총 5조6820억 원으로, 2020년의 1조5684억 원과 비교하면 무려 362%나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급증 현상의 배경에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수입 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크게 상승한 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특히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착공부터 준공까지 수년이 소요되는 장기 프로젝트인 만큼, 최초 도급계약 체결 시점과 실제 공사 진행 시점 사이의 물가 변동이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여기에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과 같은 설계 변경이 더해지면서 공사비가 당초 계획보다 대폭 증가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이러한 갈등 해소를 위해 '정비사업 코디네이터' 인력을 2024년 170명에서 2025년 200명으로 늘렸지만, 여전히 급증하는 분쟁 사례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입니다. 검증 요청 건수의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고려하면, 2026년에도 이러한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신반포21차와 포스코의 시공사 분쟁 사례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21차 재건축사업조합과 포스코이앤씨 간 공사비 갈등은 현재 진행형 분쟁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2020년 5월 시공사로 선정된 포스코이앤씨는 조합과 공사비 1019억 원에 최초 도급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러나 2022년 포스코이앤씨가 하이엔드 브랜드를 출시하면서 기존 '더 샵'이 아닌 '오티에르' 브랜드가 적용됐고, 2025년 4월 조합원 설명회에서 포스코이앤씨는 설계 변경과 물가 상승을 이유로 950억 원의 증액을 요구했습니다. 이는 최초 계약액의 거의 2배에 달하는 총 공사비 약 1970억 원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조합 측은 총회에서 공사비 인상 안건을 부결시켰고, 갈등은 지속됐습니다. 2026년 1월 22일 서울시 코디네이터가 총 공사비 1676억 원으로 중재 결과를 냈으나 조합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분쟁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이로 인해 당초 2025년 10월 예정이었던 입주는 2026년 3월로 5개월가량 지연된 상태입니다. 조합원 40여 명은 2026년 1월 29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 앞에서 공사비 증액 반대 규탄 시위를 벌이며 "일반분양 시점까지 포스코이앤씨에서 공사비를 부담해왔는데 최초 도급액의 2배에 가까운 공사비가 집행되도록 내부에서 통제가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포스코 측은 "사업기간 발생한 추가 설계 변경사항과 급격한 물가변동 등으로 인해 어려움이 있었다"며 "공사비 미합의 기간에도 불구하고 신의성실을 우선으로 해 공사중단 없이 공정을 수행해 왔고 향후 입주까지 원활히 진행되도록 적극 협조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갈등은 신반포21차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동대문구 '청량리 롯데캐슬 하이루체(청량리7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도 롯데건설과 조합이 약 230억 원 수준의 공사비 증액 건으로 협상 중이며,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2027년 4월 예정된 입주가 늦춰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서초구 잠원동 '메이플자이(신반포4지구)'도 3082억 원의 공사비 증액 건으로 GS건설과 조합이 갈등을 빚었으나, 입주 두 달 전 서울시 중재로 가까스로 788억 원에 합의한 바 있습니다.
중재 제도의 한계와 제도 개선 방향
현재 운영되고 있는 한국부동산원과 서울시의 공사비 검증 및 중재 제도는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행 강제력이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막대한 인력비용과 검증비용, 시간을 투입해 중재 결과를 도출하더라도 시공사나 조합이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는 구조입니다. 실제로 갈등 사업장의 상당수는 조합과 시공사 모두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어서 공사 중단이나 입주 지연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매우 큽니다.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사례는 이러한 장기 대치의 폐해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마지막 조경 공사를 앞두고 시작된 시공사와 시행사 간의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결국 그 피해는 조합원 개개인에게 고스란히 돌아갔습니다. 만약 적절한 시점에 공사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공사가 중단 없이 진행됐다면, 현재 올림픽파크포레온 조합원들이 부담해야 할 분담금은 훨씬 낮아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특히 법적 분쟁으로 갈 경우 시행사가 시공사를 이기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상승하는 자재값과 인건비 등은 객관적 수치로 명확히 입증되기 때문에 법원에서도 이를 인정하는 추세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첫째, 중재 결과에 일정 수준의 강제성을 부여하는 입법이 필요합니다. 물론 완전한 강제는 어렵더라도, 중재 결과를 거부할 경우 그에 따른 책임을 명확히 하는 방식으로 실효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둘째, 분양가 상한제 규제를 완화하거나 철폐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합니다. 현행 제도에서는 물가 변동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시공사가 손실을 감수하거나 사후 증액을 요구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셋째, 선분양 방식에서 후분양 방식으로의 전환을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후분양 제도에서는 실제 공사비가 확정된 후 분양가가 결정되므로,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갈등 자체가 원천적으로 줄어들 수 있습니다.
넷째, 공사비 투명 공개 제도를 강화해야 합니다. 시공사가 요구하는 증액의 근거를 명확히 하고, 조합원들이 이를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한다면 불필요한 의심과 갈등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재건축·재개발 공사비 갈등은 단순히 조합과 시공사 간의 문제가 아니라 입주 지연과 분담금 증가로 이어져 수만 명의 조합원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사회적 문제입니다. 중재 인력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한 만큼, 이행 강제력 부여, 분양가 규제 완화, 후분양 확대, 공사비 투명성 강화 등 다각적인 제도 개선이 시급합니다. 장기 대치로 인한 피해가 결국 조합원 개개인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인식하고, 합리적 타협과 함께 실효성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되어야 할 시점입니다.
[출처]
서울경제 - "뛴 공사비 못 믿겠다" 검증 5년새 4배 폭증…정비사업 곳곳 파열음: https://n.news.naver.com/article/011/0004585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