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전세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 오면서, 나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안 됩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숫자로 보면 대출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자산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소득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계속 막혔다. 이상한 건, 돈이 없는 게 힘든 게 아니라 방법이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이 더 사람을 괴롭힌다는 점이었다.
거절당하는 건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다
은행 창구에서 “이건 규제 때문에 안 됩니다”, “연말이라 어렵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됐지만 마음은 다르게 반응했다. 마치 내가 뭔가 잘못한 사람인 것처럼, 혹은 자격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게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걸 알아도, 반복되면 이상하게 자존감이 깎인다. 나는 그냥 계약대로 돈을 돌려주려는 건데, 왜 이게 이렇게까지 힘들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불안은 숫자보다 먼저 움직인다
가장 힘들었던 건 금리가 5%냐 4.5%냐 같은 계산이 아니었다. 그 전에 “이게 해결이 될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 게 더 힘들었다. 밤에 누워서도 계속 계산을 하게 된다. 안 되면 어떻게 하지, 이게 지연되면 어떤 문제가 생기지,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숫자는 나중에 정리할 수 있어도, 이 불안은 정리가 안 된다.
사람은 돈보다 ‘길이 있다’는 걸 더 필요로 한다
그래서 나에게 가장 큰 안도감을 준 건 금리가 조금 낮아졌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건 됩니다”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였다. 그 순간 갑자기 숨이 쉬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조건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비용이 조금 더 들어도 괜찮았다. 중요한 건 길이 있다는 거였다. 막힌 벽 앞에 서 있다가 문 하나를 발견한 기분에 더 가까웠다.
이 과정은 나만의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이 일을 겪으면서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니,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다들 숫자보다 감정이 먼저 무너졌다고 했다. 해결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해결이 가능한지조차 알 수 없을 때가 제일 힘들다고. 그래서 이 글은 해결책을 말하기 위한 글이라기보다는, 이런 과정을 겪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 쓰는 글에 가깝다.
불안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부산물일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게 개인이 유난히 예민해서 생긴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시스템이 복잡해질수록, 사람은 설명을 듣기 전에 거절을 먼저 듣게 되고, 그 과정에서 감정이 먼저 상처를 받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불안을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구조가 만들어낸 감정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그래야 스스로를 조금 덜 탓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배운 건 하나다. 돈 문제는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 관리의 문제일 때가 많다는 것. 그리고 그 감정을 다독여주는 말 한마디가, 때로는 금리 몇 퍼센트보다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