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10·15대책’으로 서울 전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자, 시장에 나타난 첫 반응은 거래 위축이 아니었다. 오히려 경매 시장 과열이었다. 10월 기준 서울 아파트의 평균 낙찰가율이 102.3%를 기록하며, 감정가보다 비싸게 팔리는 아파트가 속출했다. 이는 2022년 6월(110.0%) 이후 3년 4개월 만의 일이다. 부동산 규제가 투기를 막기보다 또 다른 투기를 불러온 셈이다.
■ 규제의 역설, 왜 경매로 몰리나
토지거래허가구역 내에서는 부동산 매입 시 관청 허가가 필요하며, 2년 실거주 의무가 있다. 즉, 전세를 끼고 매입하는 ‘갭투자’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경매 낙찰 부동산은 예외다. 거래 허가 없이 소유권 이전이 가능하고, 대출만 받지 않으면 낙찰 직후 임대를 놓을 수도 있다. 이 ‘틈새’를 파고든 투자자들이 한꺼번에 몰린 것이다.
결국 시장은 또다시 ‘규제의 사각지대’를 찾아 움직이고 있다. 이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반복된 패턴이다. 2017년 투기지역 지정 이후 ‘갭투자’가 비규제 지역으로 이동했고, 2020년에는 수도권 외곽으로, 그리고 이제는 경매 시장으로 흘러가고 있다. 정책의 목적이 ‘거래 억제’라면, 시장은 언제나 ‘회피의 창구’를 만들어낸다.
■ 실제 사례: 광진·성동구 낙찰가율 130% 돌파
서울 광진구 광장동 청구아파트 전용 60㎡는 10억1천만원 감정가에 14억1123만원(낙찰가율 139.7%)에 낙찰됐다. 무려 27명이 입찰에 참여했다. 같은 날 자양동 현대6차도 감정가 9억6천만원에서 12억5천만원(130.8%)에 낙찰됐다. 성동구 금호동한신휴플러스 전용 60㎡는 39명이 경쟁해 130.85%로 팔렸다. 이는 단순한 ‘실수요 경쟁’이 아니라, 규제회피형 갭투자의 재등장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낙찰가율이 높아질수록 실거주보다는 ‘전세를 끼고 매입’하려는 수요가 많다는 것이다. 즉, 이번 시장 과열의 본질은 여전히 투자 목적에 가깝다. ‘토허규제’가 강해질수록 투자자들은 다른 출구를 찾는다. 그 결과, 경매 시장이 새롭게 부상한 것이다.
■ 경기도 주요 지역도 ‘풍선효과’
이 같은 현상은 서울에 국한되지 않는다. 10·15대책으로 함께 규제된 수도권 12개 지역(과천, 분당, 하남, 용인 수지 등)에서도 낙찰가율이 급등했다. 10월 평균 낙찰가율은 97.9%로, 전달 94.4% 대비 3.5%p 상승했다. 특히 성남 분당구 105.6%, 하남시 102.9%, 안양시 동안구 102.3%로 100%를 넘어선 곳도 등장했다.
이는 ‘규제 풍선효과’의 전형적 모습이다. 매매 시장이 막히면 경매가 열리고, 대출이 막히면 현금 부자만 살아남는다. 결국 규제는 시장의 체질을 바꾸기보다 자산가 중심의 시장 집중 현상을 강화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 경매가 과열되면 나타나는 시장 구조적 리스크
경매 과열은 단기적으로 시장의 회복 신호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리스크 누적’을 의미한다. 낙찰가율이 100%를 넘는다는 것은, 이미 감정가를 초과한 가격에 ‘현금 투자’가 이뤄지고 있음을 뜻한다. 만약 시장이 다시 하락세로 돌아선다면, 이 고가 낙찰자들은 단기간에 수억 원의 평가손을 입을 수 있다.
즉, 지금의 현상은 ‘전세 레버리지’를 활용하지 못한 대신 현금 유입으로 버티는 버블의 전조일 수도 있다. 특히 금리가 고점에서 유지되는 가운데, 실수요자의 구매력은 약화되고 있다. 결국 시장 전체로 보면 ‘가격 방어’가 아니라 유동성 집중에 따른 불균형이 심화되는 것이다.
■ 과거 사례에서 보는 경고 신호
비슷한 현상은 과거에도 있었다. 2020년 하반기, 부동산 규제가 강화되자 수도권 외곽의 아파트 낙찰가율이 급등했다. 당시에는 ‘김포·파주·남양주’로 자금이 몰렸고, 1년 뒤 이 지역들은 실거래가가 20~30% 급락했다. 낙찰가율이 오를 때마다 ‘과열→하락’의 패턴이 반복된 것이다.
또한 2008년 미국 부동산 위기 직전에도 ‘Subprime Auction(서브프라임 경매)’ 시장이 한때 활황을 보였다. 정책 규제 강화와 금리 인상으로 일반 매매가 줄자, 투자자들이 부실 담보를 싸게 사들이며 단기 반등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 뒤 시장 전체가 붕괴했다. 지금 한국 시장이 보여주는 구조는 이때와 매우 닮아 있다.
■ 전문가들의 시선 – "지금은 심리 장세"
전문가들은 이번 현상을 ‘기대심리 장세’로 본다. 지지옥션 이주현 연구위원은 “토허구역 확대로 거래량은 줄었지만, 호가가 유지되는 가운데 일부 투자자들이 경매로 몰리며 과열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앞으로 매매가격이 다시 조정 국면에 들어서면 경매 낙찰가율도 급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는 “금리 인하 기대감이 아직 실현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도한 고가 낙찰은 리스크가 크다”며 “낙찰가율이 100%를 넘는 시점은 오히려 시장의 고점 신호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 정책의 의도와 현실의 괴리
정부의 의도는 명확하다. 갭투자를 억제하고 실수요 중심의 시장으로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허가제’라는 규제가 오히려 경매, 리츠(REITs), 외국계 자본 등 비공식 투자 시장을 키우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글로벌 투자기관들이 한국 부동산 경매 시장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만약 이들이 본격적으로 매입에 나선다면, 일반 투자자는 더 이상 경쟁조차 할 수 없게 된다.
즉, “투기 억제 정책이 오히려 투자를 독점화시킨다”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 부동산의 본질은 신뢰다
지금 시장이 혼란스러운 이유는 ‘가격’ 때문이 아니라 ‘불확실성’ 때문이다. 정부가 정책을 바꿀 때마다 투자자와 실수요자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놓인다. 그 결과, 단기 수익을 노리는 유동성만 남고, 장기 거주와 자산 축적을 위한 안정적 수요는 줄어든다.
결국 부동산 시장을 진정시키는 것은 ‘규제의 양’이 아니라 ‘정책의 신뢰’다. 정책이 일관되지 않으면, 시장은 언제든 또 다른 틈새를 찾는다. 이번 경매 과열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 앞으로의 전망 – 단기 반등, 중기 조정
11월 이후 부동산 시장은 단기적으로 강보합세를 유지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조정 가능성이 높다. 금리 인하가 늦어질 경우 자금 유입이 둔화되고, 2026년 이후 입주 물량이 본격적으로 쏟아지면 공급 압박도 커질 것이다. 현재의 경매 과열은 “실수요 기반의 회복”이 아니라 “자금 흐름의 일시적 왜곡”으로 봐야 한다.
따라서 투자자라면 지금의 경매 시장을 단기 수익 기회로 보기보다는 위험 관리의 시점으로 바라봐야 한다. 특히 낙찰가율이 110%를 넘는 지역에서는 ‘하락 리스크’가 매우 크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 결론 – 시장은 규제를 이긴다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2006년, 2017년, 2020년에도 ‘투기 차단 대책’이 나올 때마다 시장은 새로운 우회로를 만들어냈다. 이번에는 그 출구가 ‘경매’였다. 규제가 강할수록 유동성은 더 빠르게 흐르고, 결국 시장은 정부의 의도를 비웃듯 다시 움직인다.
“규제가 바람이라면, 시장은 물과 같다.” 막아도 길을 찾아 흐른다. 지금의 경매 과열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그 속엔 한국 부동산 정책의 구조적 한계와 ‘신뢰의 결핍’이 녹아 있다.
따라서 진정한 해법은 더 강한 규제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방향성과 일관된 원칙을 세우는 것이다. 시장 참여자들이 정부를 믿을 때, 비로소 ‘갭투자의 귀환’은 멈출 수 있다.
📌 핵심 요약
- 서울 아파트 경매 낙찰가율 102.3%, 3년 4개월 만의 최고치
- 토지거래허가구역 예외로 경매시장에 투자자 몰림
- 광진·성동 등 한강벨트 130% 낙찰, 경기 주요 지역도 과열
- 낙찰가율 상승은 ‘심리 반등’이지 실수요 회복이 아님
- 규제 강화가 오히려 자금 쏠림과 불균형을 심화시킴
- 정책 신뢰 회복 없이는 또 다른 투기 시장이 반복될 것
결국, 부동산 시장의 방향은 정부가 아니라 신뢰가 결정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