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더 이상 금리의 하위 변수가 아니다
2025년, 전 세계적으로 부동산이 가진 의미는 완전히 바뀌었다. 과거에는 경제 성장의 결과물로, 혹은 금리에 따라 움직이는 종속 변수로 여겨졌던 부동산이 이제는 임금, 소비, 정치 구조까지 흔드는 독립적인 거시경제 변수로 변모했다. 특히 주거비의 급등은 전통적인 경제 이론을 무력화시키고 있으며, 이제는 단순한 자산 시장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분노와 정치적 긴장의 진원지로까지 떠오르고 있다.
최근 공개된 ‘데모그라피아 국제 주택 구매력 보고서 2025’는 그 심각성을 수치로 보여준다. 조사 대상 95개 도시 중 주택 가격이 ‘감당 가능한(Affordable)’ 수준으로 평가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다시 말해, 지금 이 지구상에 중산층이 소득만으로 집을 살 수 있는 도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중산층이라는 계급은 빠르게 사라지고 오직 하위 계층과 상위 계층만 남는 게 아닐까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MAGA 라는 타이틀로 중산층을 부활시키겠다고 하는데 과연 부동산 시장에서 어떠한 형태로 작동할 지는 현재로써는 미지수다.
중산층의 무너진 사다리…세계 주요 도시 사례
가장 충격적인 통계는 세계 최고 비싼 도시로 꼽힌 홍콩에서 나왔다. 중위소득 대비 주택 가격 비율이 14.4배에 달했으며, 시드니(13.8배), 산호세(12.1배), 밴쿠버(11.8배)가 그 뒤를 이었다. 이는 해당 도시의 평균 소득 가구가 생활비를 모두 제하고도 무려 12년 이상을 모아야 겨우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의미다.
IMF의 주택구입여력지수(Housing Affordability Index) 또한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미국은 2021년 150 수준에서 2024년 중반 80대 중반까지 떨어졌으며, 영국 역시 같은 기간 105에서 70 이하로 추락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직전보다 더 심각한 구매력 붕괴를 의미하며, 이미 많은 국가에서 중산층이 자산 사다리를 타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경고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전세 제도마저 정부 정책 등으로 사라지는 판국에 월세 제도만 있었던 다른 나라들보다 더 빠르게 중산층으로 가는 사다리가 빠르게 무너지는 게 아닐까 우려스럽다.
팬데믹 유동성과 왜곡된 자산 시장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팬데믹 이후 각국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전례 없는 수준의 유동성을 공급했다. 문제는 이 자금의 상당 부분이 생산 투자로 가지 않고 부동산과 금융 자산 시장으로 유입되었다는 점이다.
OECD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실질 주택 가격은 최근 10년간 37% 상승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소득 대비 주택 가격 비율은 평균 16% 상승에 그쳤다. 부동산 가격은 소득보다 두 배 이상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공급이 제한적인 도심 고급 주택은 자산가들의 투자처로 전락해 실수요자들이 밀려나고 있다.
주거비 인플레이션, 물가의 끈적한 본질
현재 세계 주요국에서 관찰되는 ‘끈적한 인플레이션(Sticky Inflation)’의 핵심은 주거비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주거비 항목은 3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2025년 9월 기준 전년 대비 3.6% 상승했다. 이는 전체 물가 상승률을 상회한다. 전세라는 제도 자체에서 이러한 현상이 나온 걸 보면 우리나라 역시도 주거비 항목이 빠르게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최근 월세 지수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도 더 이상 주거비 역시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임대료 통계 반영의 시차, 정책 타이밍을 왜곡시킨다
주거비 인플레이션의 문제는 단지 수치뿐 아니라, 정책 반영의 시차 문제에도 있다. 미국 미네소타 연은의 분석에 따르면 임대료 상승분이 CPI에 반영되기까지 최대 18개월의 지연이 발생한다. 즉, 우리가 현재 보는 물가 지표는 과거의 주거비 인상을 반영한 것이며, 이는 통화 정책의 적절성을 왜곡시킬 수 있다.
금리 상승에도 떨어지지 않는 집값, 왜?
고금리는 보통 부동산 가격을 누르는 요인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3%대 고정 모기지를 확보한 기존 주택 보유자들이 주택 매도를 포기하면서 매물 잠김 현상(Lock-in effect)이 발생했고, 공급 부족이 집값 하락을 막고 있다.
미국 프레디맥에 따르면 2025년 현재 30년 만기 고정 모기지 금리는 6.22%다. 이는 팬데믹 이전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임에도, 기존 매물은 시장에 나오지 않고, 신규 수요자들은 높은 이자 부담에 진입 자체가 불가능해지며 시장의 경직성이 강화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수치는 함정이 있다. 왜냐면 상당수 집주인들이 저금리 시절 집을 매수해 금리 부담이 적은 상황에서 상급지나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는 걸 꺼리고 있다. 왜냐면 기존 금리보다 신규 주택 모기지론이 너무 높다 보니 주택 거래 자체가 잠기는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울의 상황은 세계 최악 수준
한국은 이 모든 글로벌 현상들이 한꺼번에 심화되어 나타나는 나라다. 국토부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중위소득 대비 주택 가격 비율은 무려 13.9배. 이는 홍콩과 시드니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으로, 런던(9.1배), 뉴욕(8.5배)보다도 높다.
게다가 전세라는 고유의 반사금융 시스템은 가계 부채의 촉매가 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기준 가계 부채는 1,952조8000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다. IMF는 "한국의 가계부채가 GDP 대비 92.6%에 달하고, 변동금리 비중이 높아 소비를 빠르게 위축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거비가 만들어낸 소비절벽
OECD 기준으로 가처분 소득의 40% 이상을 주거비에 쓰면 '과부담'으로 분류된다. 현재 한국 청년층 상당수가 이 기준을 초과한 상황이다. 전월세 부담이 지나치게 커져 소비가 위축되고 있으며, 이는 소매, 외식, 여행 등 내수 전반을 압박하고 있다.
Zillow에 따르면 미국 평균 임대료는 1,925달러로 전년 대비 2.2% 상승했고, 한국은 이보다 더 빠르게 전세의 월세화가 진행 중이다. '렌트 푸어', '월세난민'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으며, 심지어 자산가들까지도 월세 수익에 집중하면서 주택이 투자의 수단으로만 고착화되는 구조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무엇보다 똘똘한 한 채 정책이 강력하게 먹혀들고 있다는 걸 반증한다. 시장이란 공정한 경쟁을 통해 가격이 상승하거나 하락해야 하는데, 주거 공급 시장마저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으니 가격은 끊임없이 오를 수밖에 없고 이는 주거비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자산 상승 = 소비 진작? 그 논리는 끝났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여전히 '부의 효과(Wealth Effect)'를 주장한다. 주택 가격 상승이 자산을 보유한 고령층의 소비를 유발해 내수를 지탱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최근 연구는 이 논리에 강하게 반박한다.
프린스턴대 연구진은 주택 가격 상승이 무주택자의 출산 포기를 유도하며,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의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기업 대출보다 부동산 대출에 치중하는 금융기관의 행태는 생산적 투자, R&D 투자를 위축시키고, 중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한국, 지금이 구조개혁의 마지막 기회
지금 필요한 건 금리 인하나 세금 감면 같은 단기적 처방이 아니다. 주거 구조의 개편, 수도권 집중 해소, 전세제도의 재설계와 같은 근본적 시스템 개혁이 시급하다.
또한 청년과 실수요자에게 진입 가능한 자산 사다리를 제공하기 위한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 주택이 투자의 대상이 아닌, 삶의 기본 조건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금융, 조세, 공급 정책이 서로 맞물려야 하며, 지금 이 시점이 그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하지만 IMF 등에서 이야기하는 지금의 구조 개편에는 공급 시장의 경쟁을 전혀 논하지 않고 있다. 주거 구조의 근본적 개편을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시장경제 원리를 따라야만 한다.
결론: '사다리'가 끊긴 사회,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글로벌 주택 위기는 단순히 집값의 문제가 아니다. 계층이동의 통로가 막혔다는 사회적 경고이자, 미래세대의 기회 박탈이라는 구조적 위기다. 주택 문제는 경제, 정치, 사회를 뒤흔드는 최전선에 있다.
지금 사다리를 다시 놓지 않는다면, 전 세계는 더욱 거대한 양극화와 불평등의 수렁으로 빠져들 것이다. 서울, 그리고 한국은 그 경계선에 서 있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