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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의 중심 통화는 오랫동안 미국 달러였다. 하지만 2025년 현재, 중국은 그 질서에 균열을 내고 있다. BRICS 동맹, 위안화 결제망(CIPS), 그리고 디지털 위안화(CBDC)까지 — 중국은 금융 패권의 새 모델을 실험 중이다. 이 글에서는 위안화 국제화 전략의 구체적 경로와 달러체제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 분석한다.
BRICS 중심의 반(反)달러 연대 – 위안화 결제의 확산
위안화 국제화의 출발점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달러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본격적인 전환점은 2020년대 초, 미국의 대중국 관세와 기술제재가 강화되면서부터다. 달러결제망(SWIFT)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자, 중국은 자체 결제망 CIPS(Cross-Border Interbank Payment System)을 확장했다.
2024년 이후,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 회원국들이 CIPS를 통한 위안화 결제를 적극 채택하기 시작했다. 특히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SWIFT 제재로 인해 위안화 결제를 주요 대체수단으로 삼았다. 2025년 현재, 러시아-중국 교역의 80% 이상이 위안화로 결제되고 있다.
또한 중동 산유국들의 변화도 눈에 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BRICS+ 가입 이후 원유 일부를 위안화로 결제하기 시작했고, UAE·이란도 동일한 시스템을 검토 중이다. 이는 미국의 석유-달러 체제, 즉 “페트로달러 시스템”의 균열을 의미한다.
결국 BRICS는 단순한 경제협력체를 넘어 ‘위안화 결제 블록’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달러의 독점적 지위에 실질적 위협을 주는 첫 사례로 평가된다.
CIPS 시스템의 성장 – SWIFT를 대체할 수 있을까?
CIPS는 2015년 중국인민은행(PBOC)이 주도해 만든 국제 은행 간 위안화 결제 네트워크다. 현재 전 세계 1300여 개 금융기관이 연결되어 있으며, 2024년 기준 일일 결제액은 약 800억 달러 규모로 집계된다. 비록 SWIFT(약 5조 달러/일)와는 규모 차이가 크지만, 성장 속도는 매우 빠르다.
CIPS의 강점은 단순한 결제망이 아니라, 중국식 금융 네트워크의 표준화 플랫폼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제재를 가해도 독립적으로 작동할 수 있으며, 러시아, 이란, 아르헨티나 등 서방 제재국들이 CIPS 가입을 늘리고 있다.
또한 2025년에는 “CIPS 3.0”이 공개될 예정이다. 이 버전은 스마트컨트랙트 기능을 탑재해, 자동 결제·신용평가·수출입 정산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다. 즉, 위안화 결제 시스템이 ‘AI 기반 금융 네트워크’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달러 중심 국제금융 시스템에 기술적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단순히 통화 단위의 경쟁이 아니라, “금융 인프라 주도권 전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디지털 위안화 (e-CNY)의 등장 – 통화 패권의 새로운 무기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CBDC)는 위안화 국제화 전략의 핵심 도구다. 2021년 시범 도입 이후 2025년 현재 40개 주요 도시와 10여 개 국가 간 실시간 결제 실험이 진행 중이다.
디지털 위안화는 블록체인 기반이지만, 기존 암호화폐와 달리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관리한다. 이 덕분에 국제 결제 시 송금 속도는 10초 이내, 수수료는 0.01% 수준으로 줄었다. 또한 금융 제재를 회피할 수 있어, 러시아·이란 등 일부 국가는 디지털 위안화 결제를 이미 실험 중이다.
2025년 3월 BRICS 정상회의에서는 “디지털 위안화-루블 직결 결제 시스템”이 공식 채택되었다. 이는 달러 없이 국가 간 거래가 가능한 새로운 통화체계의 시범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달러의 글로벌 독점이 처음으로 기술에 의해 흔들리는 순간이다. 즉, 위안화의 힘은 단순한 외환거래가 아니라 “결제 네트워크 + 디지털 인프라 결합”에 있다.
미국 달러체제와의 차별점 – 신뢰 대신 통제
달러는 신뢰(Trust) 위에 세워진 통화였다. 브레턴우즈 체제 이후, 미국의 금융·법치·군사력은 달러의 가치를 지탱하는 3대 축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위안화는 ‘신뢰의 통화’가 아닌 ‘통제의 통화’로 설계되었다.
디지털 위안화는 사용자의 거래 내역이 중앙은행 시스템에 즉시 기록되며, 이 데이터를 통해 금융 흐름을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있다. 이는 투명성과 효율성 측면에서는 강점이지만, 개인 프라이버시와 자유시장 원리에 대한 우려도 크다.
결국 달러는 신뢰의 통화, 위안화는 통제의 통화라는 대비가 존재한다. 중국은 이를 통해 ‘질서 있는 금융세계’를 내세우며 개발도상국들에 새로운 질서를 제안하고 있다.
전망 – 위안화의 미래와 글로벌 경제의 재편
위안화의 국제화는 단기간에 달러를 대체하지는 못한다. 2025년 현재 국제결제통화 비중은 달러 58%, 유로 22%, 위안화 5% 수준이다. 그러나 그 5%의 성장세가 매우 가파르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위안화 비중은 2%에 불과했다.
중국의 전략은 장기적이다. 달러를 직접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평행한 금융우주(Parallel Finance)”를 만드는 것이다. 즉, BRICS와 제재국, 개발도상국이 달러 없이도 무역과 결제를 할 수 있는 대체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을 포함한 수출국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달러 기반 결제망에만 의존하던 기업들이 이제는 위안화·유로화·디지털 통화 등 복수 통화 결제 전략을 고려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결론
1985년 프라자합의 이후 일본이 달러 중심 질서에 편입되며 경제적 종속을 피하지 못했다면, 2025년의 중국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CIPS와 디지털 위안화는 “달러체제를 대체할 수 있는 기술적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달러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그 절대적 지위는 분명 흔들리고 있다.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는 단순한 금융 전략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 질서 재편의 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우려스러운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중국이라는 나라의 시스템 자체가 신뢰보다는 통제의 국가 때문이다.